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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Life/Book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 / 이기호

by 타비몽 2020. 8. 15.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Cywold Date. 2009.02.01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는 순전히 제목 때문이다.a
인생에 있어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럴때마다 확신에 찬 선택은 없다.

매순간 갈팡질팡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 선택이든 한쪽을 버릴수 밖에 없기에 선택의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갈팡질팡 머뭇거리다 아예 선택할 수 있는 기회조차 잃는 것이 더 나쁠 뿐이다. 적어도 나의 경험으로는 그렇다. 하여튼 매순간 선택의 기회가 찾아올 때 마음 속의 갈팡질팡하며 머뭇거리는 나이기에 이 책의 제목은 정말 가슴에 팍 와 닿을 수 밖에 없었다.

처음엔 장편소설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 책은 여러편의 짧은 단편소설을 한권으로 묶어 펴낸 책이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는 그 단편 소설 중 하나이다. 짤막 짤막한 단편들이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다. 심각하고 슬픈 내용이지만, 해학적으로 표현한 작가의 위트가 돋보인다. 마치 일본의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처럼 말이다..

읽는 내내 피식 피식... 그리고 큭큭... 웃음이 삐져나와서 술술 읽혀지는 내용들이다.

특히 "원주통신", "할머니, 이젠 걱정 마세요",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의 단편들이 코믹하고 재미있었다. 그러나 그 코믹한 내용 속에서 왠지 모를 슬픈 현실이 겹쳐져 보이기도 해 씁쓸하기도 하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1999년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버니≫로 등단한 이기호 작가의 단편소설집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최순덕 성령충만기≫ 이후 2년 만에 묶어낸 두 번째 소설집으로, 작가��

book.naver.com

"나쁜소설" 에서는 몇년째 공무원 시험준비하는 백수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남에게 읽어주는 책인 "나쁜 소설"을 읽고 그것을 소리내어 읽어줄 사람이 주위에 아무도 없어 여관에서 콜걸에게 책을 읽어준다.

참 지지리 궁상의 백수구나라며 서글퍼지고, 흙만 먹는 사나이가 들려주는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가정식 야채볶음흙" 을 읽고는 왠지 진짜로 야채볶음흙을 만들어 보고 싶은 충동까지 인다.

"원주통신"에서는 학창시절 한번도 본 적은 없지만 근처 동네로 이사온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자기가 잘 아는 이웃이라며 거짓말을 한 게 화근이 되어 훗날 벌어지는 에피소드이고, "당신이 잠든 밤에"는 돈을 마련하기 위한 어설픈 자해공갈단 두 남자의 불쌍한(?) 이야기다. "국기게양대 로망스"는 이거 뭐야?? 라는 느낌을 받을만큼 참 황당한 이야기지만, 왠지 모르게 참 슬프다.

그리고  "수인(囚人)"은 마지막까지 소설가이고자 했던 한 남자의 안타까운 이야기다.

"할머니, 이젠 걱정마세요"는 할머니의 아픈 과거를 위로하려다 황당하게 벽과 장농사이에 끼인 결말로 큰 웃음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는 화자가 맞아온(?) 과거 이력을 통해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고 그렇게 갈팡질팡 맞고, 또 글쓰기를 해오다 소설을 쓰게 되고 그렇게 쓰여진 소설에 제목도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로 정하는 이야기다.

언뜻언뜻 황당하게 마무리가 되는가 싶고, 뭔 내용이지?라며 의아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작가의 위트넘치는 표현들이 재미있었고, 가볍게 읽기에 좋았던 것 같다. 비록 한권에 책에 단편들의 짤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긴 했지만, 나름 저마다의 재미있는 개성이 넘쳐서 좋았다.

밑줄긋기

"나는 잠시 용구가 길상이와 함께 우리집으로 찾아오는 장면을 상상해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백칠십삼만원이 적힌 게산서를 내밀면서 용구는 과연 무슨 말을 할까? 아, 이 자식이 글쎄 여자랑 술을 마시고 그냥 도망을 쳤지 뭐예요. 그러니, 부모님께서 대신 계산을...... 그러면 아버지 어머니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화통하구나, 우리 자식! 술을 한번 마셔도 통 크게 마시는구나! 잘했다! 그러니 이제 나가거라! 집일랑 아예 들어올 생각도 말고...... 나는 그런 상상을 하다가 피식, 실성한 사람처럼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원주통신> p.123

 

"서기가 돌아가고 난 뒤, 그는 다시 예전처럼 있는 힘을 다해 벽을 파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하루라도 빨리 자신의 실체를, 자신의 가정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저 벽 뒤에 자신의 소설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로선 계속 벽을 파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 제안을 수행한 자의 관성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회색 시멘트벽 그 자체가, 그의 존재였고, 그의 실체였는지도 몰랐다. 그는 그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제 그 자신이 완벽한 연장이 되었다는 것을...... 연장은 미리 벽 뒤을 내다보지 않는다는 것을...... 연장은 연장일 뿐. 그는 또다시 곡괭이와 한 몸이 되어, 온몸을 벽에 부딪치기 시작했다."

<수인(囚人)> p.226

 

"나는 또다시 야간자율학습에 참여하지 못하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시 공책에 무언가를 오랫동안 끼적거렸다. 공책에다 쓰고 또 쓰고, 나중엔 깁스를 한 석고붕대 위에도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무언가를 계속 써내려갔다. 쓰다보면 간간이 얼굴이 홧홧해지기도 했지만, 지난번처럼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이건 그래도 무언가 내 의지라는 것이, 비록 조금은 갈팡질팡했지만, 조금은 숨어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쓰는 것 자체도 계속 갈팡질팡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우연은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글이라는 것이 원래 그러니...... 하고 내 마음을 다독거리기까지 했다. 순전히 내 좋을 대로, 내 맘대로."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 p.294

 

※ 갈팡질팡 하다가 내 이럴줄 알았지 : 버나드 쇼의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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