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질구질한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하지 않는, 아니 이미 노력을 포기해버린 선재..
그저 매일 똑같은 우울하고 무미건조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참으로 꼬질꼬질한 삶을 산다. 희망찬 미래를 꿈꾸기엔 현실의 압박이 너무 큰, 그래서 그냥 삶을 견뎌내는 인물들이다.
주요 등장인물인 선재와 집주인 소라, 그리고 소라의 남편과 선재의 동생의 얽힌 관계를 빼면 특별히 연관되는 사건이나 줄거리는 없다. 그들도 그저 기막힌 우연의 인연정도랄까?!
그리고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현실이 존재할 뿐...
그래서 더욱 이 책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이토록 사소한 멜랑꼴리한 현실이 꼭 나의 현실인 것 같아서...
___밑줄긋기
선재는 첫 출근을 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해 보았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목욕도 하고 이발도 하고 구두까지 닦아 보았지만, 알 수 없게도 자신의 가슴에 별다른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느낀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무덤덤한 것이다. 숱한 세월 동안 몸을 팔아 온 늙은 창부가 자신의 몸을 파고드는 손님에게 아무런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것처럼, 선재 역시 반복적으로 자신의 몸을 건드려 온 삶의 세파를 견디는 동안 그렇게 무디고 늙어 버린 영혼을 갖게 된 것이 아닐까.
p.121
선재는 희태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자신의 술잔을 들어서 입으로 가져간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얘기하는 건 아주 쉽고 재미있는 일이다. 사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게 훨씬 어려운 일이 아닌가. 왜냐하면 자기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그 이야기 속에서 등장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엄정한 도덕적 입장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어느 정도까지 나를 옹호할 것인지, 아니면 비판할 것인지 그 수위를 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잘못 정해지면, 오히려 자신을 이야기한 것이 자기를 해치는 비수가 되어 돌아온다. 자기에게 돌아가기 위해, 자기 자신과 대면하기 위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에둘러 간다. 그런 준비 없이 자기 자신과 막다른 골목에서 맞부딪치는 일은 얼마나 두려운 일이겠는가. 자신의 검은 치부를 홀로 들여다보는 것만큼 슬픈 일이 또 어디 있을까.
p.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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