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처음 나왔을 당시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쓰였다는 얘기를 듣고 한 번 읽어봐야지 했었는데, 최근 영화가 상영되고 또 한번 이슈가 된 지금에서야 읽게 된다.
모든 언론과 정치인들, 네티즌들이 분노하면서 실제 사건의 피고인들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고 있으며, 장애인 인권과 아동 성범죄에 관한 법 개선을 요구할 정도로 이 사건은 크게 확대되고 있다.
역시 책보다는 영화의 파급력이 크구나를 새삼 느끼게 해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꼭 이렇게까지 책이나 영화로 상업적 이슈가 되어야만 관심을 가지는 대중들의 심리 또한 우스꽝스럽기도 하다. 나 또한 그런 대중 속에 한 명이니 뭐라 할 말은 없다.
영화를 먼저 접하고 소설을 읽었는데, 사실 소설보다는 영화가 훨씬 잘 만들어졌다고 본다.
소설 속에는 등장하는 캐릭터의 갖가지 사연들이 조금씩 묻어나서 뭔가 좀 산만한 느낌이 들었고, 영화는 오로지 사건자체에 비중을 많이 두는 편이서 훨씬 집중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공지영의 소설은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공지영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진 않았지만,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를 읽었을 때 단숨에 읽어져 가는 흡입력은 있었으나 전체적인 스토리의 짜임새는 뭔가 엉성하다는 느낌이 강했었다. 그래서 항상 읽고 나면 허무한 느낌이 들었다. 이 "도가니"라는 소설도 소재 자체가 민감하고 불쾌해서인지 아니면 예전만큼 내가 공지영의 소설에 몰입을 못하는 건지 이상한 반감이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암튼 술술 읽어나가진 못했다. 그래서 더욱 이 소설의 짜임새가 허술하게 느껴진 걸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공지영이라는 작가가 돈과 권력에 자칫 무심코 파묻힐지도 모를 장애아동 성폭행사건을 끄집어내어 이렇게 소설로 쓰고, 또 그 소설이 영화화되어 지금이라도 모든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정당한 처벌을 요구하게 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 참으로 영향력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이런 장애아동만이 이런 일을 당하겠는가? 단지 그들이 말못하고 듣지 못한다는 장애를 가졌기에 더욱 안타깝고 애처롭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렇게 힘없는 이들을 보호하고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잔인하게 짓밟고 유유히 죗값도 치르지 않고 빠져나간다는 이 현실에 사람들은 더욱 분노하는지도 모르겠다. 소설에는 없지만, 영화 속에서 민수의 할머니가 가해자와 합의하고 재판을 없던 걸로 하자 민수가 자신과 동생에게 용서를 빌어야 하지 않느냐며 자신은 용서를 안 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격하게 울분을 토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돈"이라는 현실 앞에 힘없이 무너져 버리는 "정의"가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그것이 나의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더욱 이 소설과 영화가 주는 불편한 진실이 아닐 수 없다.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없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에요"
서유진의 이 말은 책보다는 영화 속에서 좀 더 빛을 발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집중할 수 없었던 또 하나, 된소리 맞춤법!
문자메쎄지, 베떼랑, 쎈터....
작가의 의도였는지 궁금해서 여기저기 검색해보다가 출판사인 창비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말씀하신 부분은 오자는 아닙니다. 외래어 표기법이 개정된 것도 아니고요. 국립 국어연구원에서 정하는 외래어 표기법과 조금 달리 창비에서 맞추어 쓰고 있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입니다.
창비의 외래어 표기는 기본적으로 현지음에 가깝게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현행 외래어 표기법은 규정의 통일성을 위해 된소리를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말 된소리가 현지음에 더 가까운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말씀하신 '메씨지' '쎈터'의 경우는 영어의 /s/음이 모음과 결합할 때 실제로 우리말 'ㅆ'에 가깝게 소리 나기 때문에 된소리를 살려 쓴 것입니다. "
글쎄.... 굳이 된소리 표기법을 안 써도 사람들은 외래어를 실제 발음으로 인식하고 읽지 않을까? 난 오히려 저런 표기법이 글을 읽는데 방해가 되어서 애먹었는데.... ㅡ,.ㅡ;;
__밑줄긋기
두 형제는 겁먹은 얼굴로 장경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장경사는 그러나 조만간 다시 이런 처지가 역전되리라는 것을 계산하고 있었다. 세상은 동화처럼 그렇게 녹록지 않은 것이다. 지금은 그들이 어린아이처럼 그의 바짓단을 붙들고 있지만 이 계절이 끝나면 지나온 긴 날들처럼 앞을 많은 날들을 그들은 그 앞에서 지폐를 흔들며 거만하게 굴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이번 기회에 자신이 그들의 은인이라는 것을 각인시켜야 했다.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인간들보다 우월할 기회는 거의 없다. 아니 동등할 기회조차 거의 없다. 이것이 현실이었다.
p.153
서유진은 오래도록 그런 생각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뭐지? 하고 누군가 물으면 그녀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거짓말이었다. 거짓말. 누군가 거짓말을 하면 세상이라는 호수에 검은 잉크가 떨어져 내린 것처럼 그 주변이 물들어버린다. 그것이 다시 본래의 맑음을 찾을 때까지 그 거짓말의 만 배쯤의 순결한 에너지가 필요한 것이다.
가진 자가 가진 것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는 에너지는, 가지지 못한 자가 그것을 빼앗고 싶어 하는 에너지의 두 배라고 한다. 가진 자는 가진 것의 쾌락과 가지지 못한 것의 공포를 둘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p.246~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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